엄청난 폭발이었다.
남쪽 하늘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기둥들이 차례차례 어둠에 둘러싸여 그 빛을 잃어 가더니 어느새 세상 전체가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득한 남방(南方)에서 시작되어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는 귀를 찢는 듯한 굉음, 뒤이어 성난 대지가 요동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갈가리 찢겨진 지저(地底)의 나락(奈落)으로부터 이글거리는 용암이 시뻘건 혀를 내밀었고, 타오르는 불길은 거센 폭풍을 타고 점차 북쪽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었다.
멈출 줄 모르는 대지의 몸부림에 발을 딛고 서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용암이 거느린 불길은 이미 자신이 서 있는 산 위까지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용암이 산을 거슬러 올라오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상이었다. 세상이, 세상이 이대로 멸망하는 것인가? 우리가 목숨을 다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저 지옥의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뒤엔 흔적도 없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텐데...
그때 이후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이런 황량한 산꼭대기에 홀로 서 있을 수 있는지... 내겐... 나에겐 언제나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 온,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동료들이 있단 말이다.
"앗!"
그녀는 이미 시뻘건 용암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 빠져 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다. 하늘? 내가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용암이 뿜어내는 수증기 때문에 눈앞이 희미해지고 숨이 막혔다. 두 다리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후들거렸고 그 증상은 반사적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향해 퍼져 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물밀 듯이 밀려 들었다.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용솟음쳤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정신은 여느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맑고 또렷하기만 했다.
결국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길에 의한 고통이 점점 무뎌져갈 즈음 발밑은 온통 맹렬한 기세로 포효하고 있는 용암에 의해 덮여 버렸다.
용암의 바다... 폭풍을 만나 휘몰아치는 붉은 파도를 내려다 보며 그녀는 전신에 퍼져 있던 긴장을 서서히 늦추었다. 이제 희망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믿고 따랐던 창조주조차 버린 세상, 그마저 외면해 버린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을 원망할 뿐 그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덮고 있던 암흑의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와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자신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불꽃은 온데간데없고 불에 흉측하게 타버린 두 팔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기 위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가 의지하고 있던 산은 이미 용암이 뒤덮어 버렸고, 남쪽 지평선엔 그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물보라가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구름의 경계까지 치솟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복받침 때문에 미어졌다. 우레시모의 멸망을 직접 생생하게 목격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 그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일 거란 생각에 그녀의 두 눈은 둘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타오르고 요동치는 대지는 어느새 까마득한 점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몸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점점 더 높은 하늘로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덧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 이것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구나... 나도 이제 편히 쉴 수 있겠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두컴컴한 공간의 굴곡 속에 희미한 영상이 하나 그려졌다. 아주 커다란, 마치 거인의 그것과도 같은 커다란 얼굴이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막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갈 채비를 하는 듯 그의 표정은 평온하고 한가롭기만 했다.
그 영상은 그녀의 뇌리 속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갔고, 비로소 그 정체가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을 무렵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며 애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이시여...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시여!"
그 얼굴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저 거인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믿고 의지했던 장본인이란 말인가? 세상 사람 그 누구도 그 진위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신조차도 무너뜨리지 못할 확신이 서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더 떨리고 잦아 들어갔다.
"왜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세상이... 이 세상이 이렇게, 한줌의 빛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암흑의 나락 속으로 곤두박질치는데... 왜 우리를... 구원해 주지 않으신 겁니까?"
부질없는 부르짖음이었다. 그녀가 믿는 창조주의 형상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잠을 재촉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창조주의 실망 어린 모습이 그녀의 머리 속을 더욱 더 혼미하게 만들었다.
"창조주시여... 대답해 주십시오. 정녕... 진정으로 우릴... 버리신 겁니까?"
그녀의 절규가 낭랑한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평온한 창조주의 얼굴은 이제 조금씩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몽롱한 공간의 왜곡으로 인해 일그러져 가는 영상을 항해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부르짖었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당신이 외치던, 불멸(不滅)의 말로(末路)란 말입니까!"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상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오던 빛도 사라져 버렸고 그녀는 다시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뭔가 눈앞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공간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 봤지만 다시 몸의 평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 암흑의 공간이 점점 더 심하게 자신을 쥐고 흔들었다.
"아~~~악!"
그녀의 몸이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