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 천상을 떠도는 메아리
사마리아 지상의 뷰엘을 손에 넣은 로이들은 이제 마지막 남은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을 찾아 사마리아의 성전으로 향한다. 흑마도사 길은 로이들이 무사히 네브리노의 유혈미궁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에게 검은 수정의 지팡이를 준다. 이 지팡이에는 여러 가지의 흑마법이 기록되어 있어 앞으로 계속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 루안 마을의 촌장 빌이 성전 내의 문이나 상자를 열 수 있게 해 주는 성전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얻어 두도록. 준비는 이것으로 끝! 사마리아의 성전은 미레제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오른의 호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과연 성전에서는 어떤 일들이 로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여기는 오른의 호수 근처의 한적한 나루터. 성전까지 가려면 나룻배를 이용해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조언을 따라 이곳까지 오기는 왔는데... 너무 낡아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나룻배를 보자 로이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배를 타실라우? 배 위에 앉아 있던 사공이 일행을 향해 던진 한 마디, 그런데 그의 모습이 웬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앗! 지하무덤의 세레인 강에서 우리들을 태워줬던 해골 뱃사공? 마리우스의 이 비명은 비록 사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이 놈이 어른을 가지고 노는구나! 뱃사공 할아범은 마리우스의 말을 듣자 노발대발하고, 그런 그를 진정시키느라 로이와 아리엘은 온갖 재롱을 다 동원하느라 진땀을 뺀다.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기는 하지만 배삯은 무려 종전의 3배. 성전의 입구까지 가라앉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그들은 다시 나룻터로 돌아가는 할아범의 뒷모습을 보며 그동안 참아 왔던 웃음을 터뜨린다.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성전의 입구는 고대인의 봉인에 의해 잠겨 있다. 라일의 오카리나가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 드디어 로이들은 사마리아 최고의 성지라는 사마리아의 성전 안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 놓는다. 성전은 두 개의 별관과 가운데의 정원, 그리고 본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좌측 별관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정원의 중앙에는 흰 나무 한 그루가 위풍만 당당하게 서 있는데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어도 눈여겨 봐 두는 것이 좋다. 성전 건물의 내부는 모두 푸른 빛의 벽돌로 지어져 있어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좌측 별관으로 들어선 로이들, 여기서부터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상당히 높아지므로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2층에서 첫 보스가 등장하는데 이름하여 곤충괴수 아마콘. 끈끈한 실을 뿜어내 상대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다음 치명적인 맹독으로 공격해 오지만 실을 휠·엘시스로 녹여 가면서 싸운다면 별 어려움 없이 쓰러뜨릴 수 있다. 아마콘을 쓰러뜨리면 그의 목에서 주머니 하나가 떨어져 나온다. 이것은 실루엣 실의 주머니!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그렇다, 루안 마을의 베짜는 여인 사란이다. 3층에서 저편의 보석을 얻으면 이곳에서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 잠시 쉬어가는 셈 치고 로이들은 사마리아 주문으로 루안 마을까지 순간이동해 간다. 베 짜는 여인 사란은 로이들이 가져 온 실루엣 실의 주머니에서 실을 뽑아 내어 로브를 하나 만들어 준다. 이 실루엣의 로브는 마법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해 주는 최강의 방어구로 아리엘만이 장비할 수 있다. 한편 흑마도사 길은 로이들이 성전에서 손에 넣은 저편의 보석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성전 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시켜준다... 그런 것도 있단 말이지? 마을에서의 용무를 끝낸 세 용사는 다시 사마리아의 성전으로 향한다. 나루터에 다다르자 뱃사공 할아범은 이번에도 꽤 많은 삯을 요구하며 배를 태워주지 않으려 한다. 마리우스로 인해 입은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아야겠다나. 정말 못말리는 사람이군... 아리엘은 로이와 마리우스에게 슬며시 눈짓을 하더니 동시에 할아범을 뒤로한 채 성전으로 순간이동해 버린다.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은 사마리아 주문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자 할아범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로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럼 이전엔 왜 이 배를 탔던 거야? 이번에 로이들이 공략할 곳은 바로 성전의 우측 별관. 군데군데 보이지 않는 벽이 설치되어 있어 저편의 보석이 없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곳도 좌측 별관과 마찬가지로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의 기사상에서 얻는 일루즈의 방패는 방어력의 상승과 함께 적의 마법도 반사시켜 주는 기능이 있으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 3층의 한 보물 상자 안에는 청동 거울이 들어 있다. 어디에 사용하는 것일까? 성전에서 얻은 아이템의 용도를 알고 싶다면 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이로써 이곳에서의 용무도 끝이 났다. 남은 곳은 이제 성전의 본관뿐.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은 성전의 본관에 있는 듯하다. 본관은 지상 5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그 규모가 별관에 비해 크고 웅장하다. 로이들이 본관의 홀로 들어서자 바로 앞에 큰 계단이 보이는데, 마리우스가 올라가려고 하자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어디로? 이는 바로 성전 내의 허상들 때문. 로이가 계단을 향해 청동 거울을 비추자 계단은 온데간데 없고 열려 있는 문 하나가 나타난다. 마리우스는 그 안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로이와 아리엘을 쳐다보는데... 본관의 내부는 앞의 좌·우측 별관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복잡하다. 층계 사이를 여러번 오가야 할 정도. 보이지 않는 벽은 저편의 보석으로, 허상들은 청동의 거울로 제거하며 나아간다. 1층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는데 안쪽에서만 열 수 있으므로 우선은 지나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는 성전 곳곳을 울리며 로이들에게 전해져 온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한데... 소리는 층을 올라갈수록 점점 커지고, 마침내 최상층인 5층에 다다르자 절정을 이룬다. 중앙의 넓은 방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성스러운 여신상이 로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방 주위는 이 세계의 천상을 관리하는 여러 신들의 상이 시립해 있다. 가운데에 위치한 여신상의 발 밑에는 보물 상자 하나가 놓여 있지만 성전의 열쇠로도, 라일의 오카리나로도 열리지 않는다. 상자가 놓여 있는 단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건, 고대어잖아? 고대인의 가면으로 해독하면, 천상을 떠도는 메아리에 제 3의 귀를 기울이라... 제 3의 귀? 방 안에는 성전의 다른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3층의 한 보물 상자 속에는 천상의 귀걸이가 들어 있는데, 혹시? 로이들은 다시 여신상이 있던 5층으로 발길을 되돌린다. 로이가 여신상 앞으로 다가가 천상의 귀걸이를 착용하자, 들린다! 천상을 떠도는 메아리가... 메아리의 주인공은 로이에게 신분을 밝히라고 명한다. 대답 대신 대리자의 증표를 들어 보이는 로이, 그는 전신 위오의 명을 받들어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당당히 허공을 향해 외친다. 그러자 메아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가르쳐 준다. 나는 사마리아의 빛의 신이자 성전을 관리하는 율법의 신 판들라... 그는 로이들에게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하사한다. 천상의 갑옷, 천상에서 만들어진 최강의 방어구로 유일하게 로이만이 장비할 수 있다. 판들라는 로이들에게 지금 곧 성전의 1층으로 내려가라고 명한다. 이전에 1층에서 보았던 커다란 문, 저 안에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이 숨겨져 있었구나...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지, 로이들은 한달음에 1층으로 내려온다. 커다란 문이 있던 곳의 반대쪽이라 추측되는 또 다른 문, 이 문은 성전의 열쇠로도 가볍게 열린다. 방 내부는 완연한 수정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중앙에 서 있는 찬란한 수정탑 안에 수정으로 만들어진 보물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저 상자 속에 마지막 뷰엘의 조각이... 이 때 로이들을 가로막는 방해자가 나타난다. 성전의 수호신 라·메리스, 그는 판들라님의 명으로 그대들의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며 맹렬히 공격해 온다. 라·메리스와 싸우는 동안은 전원의 마법이 봉쇄된다. 아리엘의 지팡이 사용이 전투의 승패를 가를 열쇠가 될 것. 결국 라·메리스는 로이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굴복한다. 다시 천상으로부터의 메아리가 들려오는데... 훌륭하다, 위오의 대리자여.그대 덕분에 위기에 처한 이 사마리아가 한가닥의 희망을 안게 되었다. 이제 수정탑 안의 보물 상자를 열어볼까?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뷰엘의 조각이 아니었다. 당황한 로이들에게 판들라는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이 있는 사마리아 최고의 성지가 이곳 성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상자 속의 물건은 조각난 뷰엘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천상의 문장, 판들라의 메아리는 로이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라는 말을 끝으로 사라진다. 사마리아 최고의 성지가 이 성전이 아니라니... 로이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평소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행동으로 일관하던 마리우스가 해답을 찾아낸다. 청동 거울로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의 눈에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 들어온 것이다. 왜 거울 안에 안개탑이 보이는 걸까... 설마? 그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수정탑, 그 모습은 허상에 불과했다. 실체는 뷰엘이 안치되어 있던 안개탑,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이 있는 곳을 알아내자 로이들의 가슴은 벅찬 희망으로 넘쳐 흘렀다. 이전에 열리지 않았던 문 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뛰어가는 위오의 3전사들, 언제나 여신의 가호가 그들을 보호해주길... 복도 끝에는 커다란 문 외에도 또 다른 방 하나가 존재한다. 그 방 안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으나 독가스 때문에 내려갈 수 없으니 다음을 기약하자. 문은 로이들에게 신분을 밝히라 말하는데 대리자의 증표를 보이면 통과시켜 주므로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본관 밖으로 나온 로이들, 붉게 물든 석양이 성전의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장관을 뒤로하고 마을로의 귀환을 서두른다. 이 때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기다리고 있었다! 전신 위오의 대리자. 성전의 정원이다! 로이들이 정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수십명이나 되는 사교의 기사단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운이 좋은 놈들이로군,
나는 오세리스의 대리자인 카이엘을 모시는 흑마기사 바실레스.
오늘로써 너희들의 재롱도 끝이다! 그러나 로이들은 냉정했다. 비록 숫적으로 열세이긴 하지만 실제로 적수가 될만한 상대는 바실레스 하나 밖에 없으니... 그만큼 로이들의 실력은 지난번 사교의 수도원에서 사투를 벌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혼자인가? 로이가 바실레스에게 묻자 그는 한마디로 잘라 응답한다. 나 혼자로도 너희 셋은 충분하다. 마리우스와 아리엘에게 사교의 기사단을 부탁한 로이는 흑마기사 바실레스와의 혈전을 위해 몸을 날리고, 때맞춰 떨어진 바실레스의 명으로 사교의 기사단이 총공세를 펼치는데... 성전에서의 전투는 이렇게 그 막이 오른다. 전세는 점점 로이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다. 사교의 기사단은 마리우스와 아리엘의 합동공세에 전열이 흐트러져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버린다. 단지 숫적으로만 둘을 능가하고 있을 뿐. 로이와 바실레스의 경우는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공방전, 서로 이렇다할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체력만 소모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로이의 검이 빛을 뿜기 시작하고... 그의 일격에 바실레스는 그만 검을 떨어뜨리고 만다. 그런데 로이는 순간 공격을 멈춘다. 다시 검을 들어라! 아직은 네가 쓰러질 때가 아니다. 바실레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재빨리 검을 주워 전열을 가다듬는다. 순간 허공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웃음소리. 꼴 좋구나! 바실레스.
오세리스의 전사로서 그런 치욕을 네 스스로 자청하다니... 그녀였다. 자레스 왕조의 지하무덤에서 로이들을 마기로 질식시켜 죽이려 했던 흑마도사 크로스. 그녀는 사교의 마도사들과 몬스터들을 거느리고 바실레스를 도우러 온 듯 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전혀 딴판인데, 바실레스가 자신은 오세리스의 전사가 아니라 대리자 카이엘의 전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도움을 거절하자 크로스도 자신은 오세리스를 위해 싸우러 온 것일 뿐 너를 도우러 온 것은 아니라며 서로 팽팽히 맞선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로이들을 공격하러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적들이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로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저 많은 적들을 어떻게 다 상대하지? 이 때 판 휠·메사 주문에 의해 나타난 불기둥이 그들의 짐을 덜어준다.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푸른 불기둥의 무리가 크로스가 데려온 몬스터들을 강타하여 거의 전멸시켜 버린 것이다. 누구일까? 우리들을 도와준 사람이... 불기둥 사이로 그의 모습을 확인한 크로스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걱정마라, 위오의 대리자여! 이 자는 내가 상대할테니. 놀랍게도 그의 정체는 루안 마을의 흑마도사 길이었다. 길의 출현에 크로스는 무척 당황해한다. 그란 아저씨! 그 자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아리엘이 길 옆으로 다가가 청했지만 그는 그녀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는다. 물러나 있어라, 아리엘. 나는 저 아이에게 되돌려줘야 할 빚이 있다. 그의 눈이 매섭게 크로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세리스님을 위해서라면 옛정도 기꺼이 져버릴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이미 옛정을 버렸노라고 하는데... 크로스의 선제 공격을 신호로 다시 전투는 재개된다. 사교의 기사들과 마도사들은 마리우스와 아리엘이, 흑마기사 바실레스는 로이가, 그리고 흑마도사 크로스를 길이 각각 상대한다. 마리우스와 아리엘의 파상공세에 사교의 전사들은 큰 타격을 입은 나머지 전의를 상실해 버린다. 로이도 시종일관 바실레스를 궁지로 몰아넣고, 길도 크로스와의 혈전을 우세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승부의 분수령은 로이의 회심의 일격에 바실레스가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시점. 그가 패하자 사교의 기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바실레스는 로이에게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카이엘님을 결코 이기지 못할 거라는 유언을 남긴 채... 전세가 역전된 사실을 깨달은 크로스는 사교의 전사들에게 공격을 재차 종용하지만 소용이 없자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런 그녀에게 길이 질책하며 나선다. 실력이 겨우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스승을 배반하고 얻은 암흑의 힘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그 말을 들은 크로스는 그를 향해 지그시 냉소를 머금는다. 당신조차도 보고 놀랄 만한 일격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그녀는 로이들과 바실레스, 사교의 전사들이 있는 쪽을 향해 매섭게 외친다. 각오해라, 전신 위오의 대리자!
지금 곧 오세리스님에 대한 충성을 이행하지 않은 쓰레기들과 함께 저 세상으로 보내줄테니... 순간 길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설마!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려고? 안돼, 막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생명을 담보로 한 최후의 도박은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로 날아올라 허공을 향해 주문을 외우던 그녀는 로이들 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친다. 카오스·람피스토 히스테라돈! 지상의 로이들은 크로스의 행동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 무슨 일일까?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은 길에게 크로스는 피를 토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당신도 죽는다. 이건 옛정을 생각한 나의 최소한의 배려다... 말을 마친 그녀는 사마리아 주문으로 전장을 탈출해 버린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검푸른 시공의 터널이 나타나고, 로이들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다급해진 길, 이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죽는다... 그런 그의 뇌리 속에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간다. 길의 시선은 성전의 정원에 서 있는 흰 나무에서 멈춘다. 흰 나무, 천상에서 자라는 거대한 고목으로 이 나무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 웬만한 화염에도 무사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는데... 되든 안되든 해보자. 길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시공의 터널에서 뭔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서둘러 로이들 쪽으로 몸을 던지며 큰소리로 외친다. 아리엘! 어서 피해라...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녀에게 길은 시간이 없다며 빨리 로이와 마리우스를 데리고 정원의 흰나무 밑으로 순간이동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보낸다. 시공의 터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괴조(怪鳥) 한 마리, 놈은 로이들을 발견하자 그 쪽으로 몸을 뒤틀며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로이들은 급히 아리엘의 사마리아 주문으로 흰 나무 밑까지 순간이동해 가고, 그런 그들에게 길은 흰나무 앞까지 날아와 비장한 어조로 한마디 충고를 내던진다. 잘 봐둬라! 저놈이 앞으로 너희들이 쓰러뜨려야 할 마조(魔鳥) 히스테라돈이다... 순간 히스테라돈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온다. 그 열기는 일대를 완전히 녹여버릴 정도. 압도적인 힘에 눌린 나머지 로이들은 그 광경을 그저 묵묵히 바라 보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데... 검은 화염은 순식간에 성전의 흰 나무 쪽으로 밀려오고, 때 맞추어 길이 흰 나무 앞에 서서 금단의 비법을 외우기 시작하자 화염의 색깔이 서서히 변해 간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흰색으로, 그리고 바로 길 앞까지 도달했을 때의 화염은 이제 진한 푸른색의 불꽃으로 바뀐다. 과학에서 얘기하는 온도에 따른 별의 색깔과는 연관짓지 말도록. 화염은 성전 일대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성전의 두 별관이 소실되고 본관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니... 성전의 정원은 말로 설명이 필요없는 상황, 흰 나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교의 전사들도, 흑마기사 바실레스도, 그리고 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로이들은 중상을 무릎쓰고 그를 찾아 나선다. 길은 흰 나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전신이 타버린 채로 쓰러져 있다. 아리엘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가 그를 안아 올리자 그는 잠시나마 정신을 차린다. 시공의 터널이 사라진 성전의 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모두... 무사한가? 그가 힘겹게 입을 열자 아리엘은 대답대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로이와 마리우스가 길의 손을 잡으며 그를 안심시킨다. 모두... 잘 봤겠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로이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주문을 사용한 흑마도사말이야... 길은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아이야... 자신의 스승이 오늘날까지 두려움 때문에 단 한번도 써보지 못한 흑마원 소환주문을 그토록 완벽하게 구사해 내다니... 그렇다면 흑마도사 크로스가 바로 길의 제자? 할 말을 잃은 아리엘에게 그는 마도사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해 당부한 후 로이들에게 너희들의 활약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파란많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라도 하는 듯 수많은 유성들이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길의 시신은 루안 마을로 인계되어 그곳에 묻혔다. 그에게 잠시나마 부정(父情)을 느꼈던 아리엘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도 컸지만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잠시 슬픔을 거두고 다시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들의 활약을 지켜 보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수크리아 항구로 향하는 그들의 가슴은 뜨거운 열의로 끓어 오르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한 로이들은 길의 어머니인 미라에게 부음을 전한 후 미노아 항구로 가는 배 위에 몸을 싣는다. 미라는 아들의 죽음을 접하자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을 거라는 말과 함께 암흑의 금서를 아리엘에게 전해준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금단의 비법이 들어 있어 앞으로의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선장의 배려로 안개탑에 도중하차한 로이들, 세 조각 난 뷰엘을 찾아 시작된 험난했던 여정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그 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안개탑은 처음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로이들을 맞이한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5층까지 올라오긴 왔는데, 보이는 것은 뷰엘의 석판뿐. 무슨 방법이 없을까? 청동 거울로 석판을 비추면... 숨겨져 있던 비문의 일부분이 윤곽을 드러낸다. 고대인의 가면으로 읽어내면, 안개탑의 6층은 선택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다... 이게 웬 말인가? 분명 안개탑은 5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리우스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소리치자 로이는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며 대리자의 증표를 석판 위에 올려 놓는다. 그러자 석판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광채가 로이들을 감싸기 시작하고, 빛이 사라졌을 무렵 그들의 몸은 탑의 옥상 위로 올라와 있었다. 옥상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묘한 조각상, 로이가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 라일의 오카리나를 연주하자 조각상의 한 면이 열리기 시작한다.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이 드디어 그 모습을 다시금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마지막 뷰엘의 조각은 안개탑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떨리는 로이의 손은 사마리아 천상의 뷰엘로... 그러나 이 때, 로이들의 마지막 임무를 방해하는 자가 등장한다. 바로 뷰엘을 지키는 괴조 바디라... 입에서 뿜어내는 흰색 화염이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나 전신 위오의 대리자가 너 따위에게 무릎을 꿇을 것 같으냐! 하나가 된 로이들의 협공에 결국 괴조 바디라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만다. 드디어 사마리아 지하, 지상, 천상의 뷰엘이 모두 로이들의 손 안에 들어왔다. 세 조각을 차례차례 조각상 안의 홈에 맞춰 끼운 후 천상의 문장을 들어 뷰엘의 결합을 명하는 로이, 사마리아를 위협하던 힘의 균형은 이것으로써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뷰엘을 머금은 조각상은 한 줄기 빛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로이들의 몸은 어느새 5층으로 돌아와 있었다. 뷰엘을 찾아 사마리아를 헤매던 고난과 시련의 여정은 이제 모두 끝이 났지만, 그러나 로이는 석판 위에 놓여 있던 대리자의 증표를 불끈 거머쥐며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진정한 사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기다려라, 카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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