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이국(異國)의 여정(旅情)



    오우란 왕국 남부에 위치한 사마리아의 또다른 왕조 자레스, 사마리아 지하의 뷰엘을 찾아 온 로이, 마리우스, 아리엘은 이 왕조의 북부 도시인 오마르로 향한다. 트리넬 시를 통해 국경을 넘어 오마르 시에 도착한 때는 이미 늦은 밤, 그런데 시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이 로이들을 막아선다.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인가? 병사들은 최근 대도적단 두글이 시를 자주 침범해 외부인에 대한 검문검색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밤에는 무조건 출입금지! 시 근처엔 인가도 보이지 않는 터라 노숙이라도 해야 할 처에 놓인 로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때 마리우스가 아리엘에게 뭔가를 속삭이는데... 그 말을 듣자 그녀는 펄쩍 뛰면서 화를 낸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오히려 그녀의 미적 자존심을 자극하고,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아리엘은 자신에게 맡기라며 일의 성공을 자신있게 장담한다. 영문을 모르는 로이는 둘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 슬며시 병사들에게 다가간 아리엘은 시종 미소 가득한 얼굴로 병사들과 흥정을 벌인다. 그 덕분에 로이들은 오마르 시 안으로 별 탈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로이에게 아리엘은 자신의 미모에 감사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뒤에 처져서 따라오던 마리우스는 병사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보자 웃음을 터뜨린다. 뭐 휠·엘시스 주문으로 병사들을 잔뜩 협박했다나... 그런 그들에게 마리우스는 일을 비밀로 해달라며 돈주머니 하나를 슬쩍 쥐어준다.

    자레스 왕조의 지하무덤으로 가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왕실의 허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 여왕을 만나 허가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오마르 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평민이 여왕을 알현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데... 한가지 희망이라면 높은 사람이 알현을 특별 주선하는 내용의 소개장. 그 만큼 이 왕조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로이들은 또 이런 정보도 얻는다. 대도적단 두글이 왕실의 보물을 훔쳐가 사령관이 몹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 사실을 확인해 보러 사령관을 만나러 가는데 병사들이 관저로의 출입을 통제하고, 결국 왕실에의 막대한 기부금을 헌납하고 나서야 비로소 출입이 허락된다. 사령관 하린은 로이들이 여왕 알현을 성사시켜 달라는 청원을 하자 기부금을 낸 사람들은 이미 내년 초까지 알현 일정이 잡혀 있어 특별한 공이 없다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런 그에게 로이가 슬쩍 도난당한 왕실의 보물 얘기를 꺼내자... 역시! 하린은 완강하게 부인하지만 로이의 유도 심문에 말려 끝내 사실을 실토하고 만다. 오마르 시 사령관의 증표인 나비크의 성인(聖印)을 두글이 훔쳐갔다... 만약 이 사실이 여왕의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중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이 때 로이의 제안이 그의 한숨을 멎게 하는데... 나비크의 성인을 찾아 줄테니 우리를 주선하는 소개장을 써 달라. 이 말에 하린은 뛸 듯이 기뻐하며 로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오우란 왕국을 대표하는 고르네오의 불꽃과 자레스 왕조를 주름잡는 두글과의 세기의 대결은 이렇게 그 막이 오른다.

    오마르 시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산 속에 두글의 산채가 자리잡고 있다. 로이들은 산채에 몰래 잠입하는데 성공, 도적들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 한 보물 상자에서 나비크의 성인을 찾아낸다. 이 때 마리우스의 눈에 띈 것은 성스럽게 빛나는 황금 여신상, 이왕 들어온 김에 본전이나 챙기고 갈까하는 그의 손이 여신상을 움켜쥐는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다. 요란한 징소리가 한동안 산채를 뒤흔들더니 순식간에 사방에서 도적들이 튀어나와 로이들을 에워싸버린 것. 일단 밖으로 나가라는 지시에는 순순히 응하지만 나비크의 성인과 황금 여신상은 여전히 로이와 마리우스의 손에 쥐어진 채였다. 도적단의 두목인 두글은 로이들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호통을 친다. 이에 로이는 태연하게 '고르네오의 불꽃'의 두목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그 말을 들은 두글은 한바탕 크게 웃더니 조롱섞인 말투로 로이를 깔아 뭉게기 시작한다. 그러한 두글의 언사에 로이는 분노가 폭발하여 두글을 내 손으로 고르네오의 불꽃처럼 만들어 놓겠노라 자신하고, 두글은 그런 로이에게 도전을 받아주겠다며 결투를 제의한다. 뭐 결투에서 생긴 불상사는 사나이답게 불문에 붙이자나... 서로를 향해 검을 뽑아든 로이와 두글, 그러나 두글은 이내 검을 거둔다. 검을 드는 것조차 귀찮다는 말과 함께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저승에서 무용담으로나 간직하라는데... 두글이 보여준 것은 폭풍 주문인 윌·엘시스, 두글의 부하들은 두목의 필살기라며 두려움에 떨지만 로이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반격에 나선다. 네오 윌·엘시스! 느닷없이 나타난 소용돌이에 두글의 몸이 솟구쳐 올라가고, 두글이 경악하는 사이에 뒤이어 로이의 네오 휠·엘시스가 소용돌이를 타고 그를 덮친다. 순식간에 두글은 온몸이 숯덩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고 부하들은 로이가 보여준 초필살기의 위력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로이의 분노는 두글의 산채가 화염에 휩싸일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하룻밤 사이에 영화를 자랑했던 두글의 산채는 두글의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국 대도적단 두글은 로이의 개선 행렬과 함께 오마르 시의 감옥으로 전원 압송된다. 로이들이 나비크의 성인을 찾아온데 그치지 않고 두글마저 토벌하고 돌아오자 하린은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약속대로 그는 여왕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써 로이에게 건네 주고, 소개장을 손에 넣은 로이들은 왕성으로 향하는 상인들의 행렬과 함께 길을 떠난다.

    베링가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그들을 막아선 괴물은 모래거인 이디프스, 그는 행렬에게 산 제물을 바치면 길을 열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행렬의 우두머리가 한 어린 소녀를 제물로 바치려하자 로이들은 일제히 이디프스에게 달려들어 일대 혈전을 벌인다. 그 결과 이디프스는 베링가 사막에 홀로 묻히는 신세가 되지만 로이들도 모두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소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무사히 자레스 왕성에 도착한 로이들, 안나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의 할머니는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여러 가지의 백마법이 기억되어 있는 백색수정의 지팡이를 선물한다.

    하린의 소개장을 손에 쥔 그들은 여왕을 만나기 위해 궁전으로 향한다. 하지만 궁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소개장을 보고도 여전히 출입을 통제하고, 이를 빌미로 로이들은 병사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다.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궁전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병사들을 꾸짓는다. 그의 이름은 아든, 나비크 여왕의 사촌 동생이자 궁전의 관리인으로 여왕과의 만남은 모두 그가 주선을 한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로이들이 가지고 온 하린의 소개장을 보자 뭔가 서운했는지 기다리라는 말만을 남기고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다 지친 로이들은 일단 궁전을 나와 숙소로 돌아간다.

    그러기를 일주일, 궁전에서 아무런 기별이 없자 로이들은 답답한 나머지 술집에서 사람들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한 노인은 아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사람이 쓴 소개장이라도 소용이 없다며 로이들이 여왕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는 또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보물을 아든이 빼앗아 가 매일 술로 괴로움을 달래고 있다는 속사정도 알려준다. 아든이란 자가 그렇게도 탐욕스런 놈이었단 말이지! 로이들은 그 노인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노인의 괴로움을 듣고든 바로 상을 박차고 일어나 궁전으로 향한다.

    아든이 집안의 가보인 노래하는 상자를 빼앗아 간 다음 정령의 돌과 교환하자는 편지를 보내왔다. 정령의 돌은 왕조의 지하무덤의 입구를 열어주는 신비한 물건으로 우연히 집 안에서 발견한 것인데 아든은 이 돌을 이용해 지하무덤에 묻혀 있는 값진 부장품들을 도굴하려 하고 있었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라 궁전 안으로 잠입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벽을 타고 올라가던 로이들은 한동안 창 안을 살피며 여왕이 있는 방을 찾기 시작하는데... 하필 밧줄을 타고 올라가던 로이와 창 밖을 바라보던 여왕의 눈이 서로 마주칠게 뭐람! 소스라치게 놀란 여왕은 밖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고, 로이들은 그런 여왕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다. 여왕의 명을 받아 병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주위는 잠시 정적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아든이 등장하자 로이가 아든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대고,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아차린 여왕은 위엄어린 어조로 로이에게 명한다.

    무기를 버리고 신분을 밝히라.

    무기를 버린 로이는 신분을 밝히는 대신 하린의 소개장을 여왕에게 전한다. 소개장을 읽어 본 여왕은 아든에게 왜 알현이 성사되지 않았냐 문책하고,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모르는 그의 면전에서 로이는 지금까지의 아든의 비리와 지하무덤 도굴 계획을 낱낱이 폭로해 버린다. 여왕은 너무나 놀랐지만 한밤중에 궁전에 침입한 저들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냐는 아든의 말에 다시 위엄어린 말투로 로이들에게 명한다.

    그대들이 진실을 말했다는 증거를 보이라.

    순간 마리우스와 아리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로만 들은 것이 다일 뿐 실질적인 물증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든은 여왕의 말에 힘을 얻은 듯 로이들을 끌고 가라는 명을 병사들에게 내린다. 그러나 로이에게는,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 증표다!

    로이의 손에는 지난 날 루프라가 건네줬던 대리자의 증표가 쥐어져 있었다. 법보다 신이 우위인 자레스 왕조이다보니 그 증표의 위력은 예상보다 컸다. 여왕은 로이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말이 진실임을 믿겠다는 맹세를 한 후 아든을 엄히 다그친다. 아든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여왕에게 자신의 잘못을 빌며 병사들을 시켜 노래하는 상자를 로이에게 내어주라고 명한다.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그는 마침내 여왕의 명에 따라 자신이 데리고 온 병사들에 의해 자신이 체포되어 나가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로이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나비크 여왕은 로이들이 자레스 왕조의 지하무덤으로 출입하는 것을 허가한다. 이제 정령의 돌만 있으면... 노래하는 상자를 노인에게 가져다 주자 노인은 기꺼이 정령의 돌을 내어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한 가지, 정령의 돌이 지닌 모습이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수석(水石)의 그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 돌이 잡화점에만 무려 6개, 누가 바꿔치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게 허사로 돌아갈 판. 마음의 부담을 안은 채 로이들은 내일 시작될 모험을 위해 잠을 청한다. 그러나 그 부담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 전문 도굴꾼 코쿠스는 아든이 체포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그의 도움 없이 홀로 일을 시작하기로 하고 미리 사 두었던 수석과 정령의 돌을 바꿔치기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는 줄곧 노인의 집을 감시해 오던 자신의 조수와 함께 로이들의 숙소에 몰래 잠입해 그 비밀스런 계획을 성공으로 마무리짓는다.

    이제 무덤 안의 보물들은 모두 내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 지하무덤의 입구에서 아무리 정령의 돌을 사용해도 입구가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정성어린 시도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입구는 그런 그들의 정성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 때, 저만치에서 여왕과 함께 로이들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데... 당황한 코쿠스는 조수와 함께 잠시 몸을 숨긴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어젯밤에 바꿔치기했던 수석을 쳐든 로이에게 지하무덤이 그 입구를 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왕와 대화를 나눈 후 로이들이 지하무덤의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코쿠스와 그의 조수는 한동안 그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러나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된 그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본분을 깨닫고는 곧바로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자레스 왕조의 지하무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세레인 강을 기준으로 건너기 이전의 미로와 건넌 이후의 무덤, 여기에는 미로에서 방황하는 불순한 자에 대한 경계가 담겨있다. 삶의 영역에 있을 때 발길을 돌리라... 그러나 로이들은 이러한 경계를 마음에 둘 여유가 없었다. 사마리아의 파멸을 막기 위해선 사마리아 지하의 뷰엘을 손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지하무덤은 왕조의 시조가 무덤의 도굴을 막기 위해 풀어 놓은 몬스터로 가득하다. 미로에서 얻을 수 있는 투사의 장갑은 공격력을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반드시 얻어야 한다. 또 빛바랜 동전 꾸러미는 강을 건너는데 필요하므로 빼먹지 말자. 미로의 출구에는 왕조의 시조인 나일 1세의 애완동물이었던 백사자 라이갈이 버티고 서 있다. 속도가 너무 빨라 초반엔 고전를 면치 못하지만 로이들은 결국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라이갈을 쓰러뜨리고 나면 미로의 출구로 나갈 수 있다. 로이들이 나온 곳은 바로 세레인 강변의 나루터, 배에 홀로 앉아 있는 해골 뱃사공에게 빛바랜 동전 꾸러미를 건네주면 아무말 없이 나일 1세의 무덤 앞까지 태워다 준다. 무덤 안은 수 많은 보물 창고와 석실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보물 상자에는 저주가 걸려 있어 여는 순간 맹독에 감염된다. 저주가 걸려 있지 않은 보물 상자는 단 하나, 바로 자레스의 보검이 들어 있는 상자이다. 그런데 이 상자에는 맹독보다 더 지독한 수호마귀(守護魔鬼)가 붙어 있다. 이 검은 유일하게 수호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마리우스만이 장비가 가능하므로 꼭 기억해 두자. 로이가 장비할 수 없는데다 가격이 황금 여신상의 배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팔아 치우면 곤란하다는 뜻. 무덤의 막다른 골목 끝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림 안의 비문을 고대인의 가면으로 해독하면,

    산 자가 왕을 알현하려면 사자의 서를 진상하라.

    사자의 서라... 이 때 한 무리의 해골기사단이 로이들을 덮친다. 그 수는 무려 서른 여섯, 그러나 기사단을 지휘하는 모키베스만 쓰러뜨리면 쉽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록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정반대편에 있는 골목에도 역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대인의 가면으로 해독하면, 뭐 고대의 음악으로 왕을 기쁘게 하라나? 이 때 로이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그렇다! 노엘이 내게 연주방법을 가르쳐 줬던 라일의 오카리나가 있었지? 로이가 라일의 오카리나를 연주하자 벽화가 그려져 있던 벽이 돌아가며 사자의 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무덤의 중앙으로, 굳게 닫힌 문을 정령의 돌로 열고 들어가면 긴 복도가 로이들 앞에 펼쳐진다. 주위에 서 있는 수십구의 석상들이 좀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주위에 시립해 있던 석상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어떠한 공격도, 마법도 이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게 끝이구나...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사자의 서는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것. 로이가 사자의 서를 들어 보이자 방금 전까지 맹렬히 달려들던 석상들이 다시 제 위치를 향해 돌아간다. 복도 끝에는 나일 1세의 석실이, 정령의 돌은 이번 임무를 끝으로 부서져 버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관과 흙으로 빚어 만든 기묘한 상자 하나가 로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 뷰엘은 저 상자 속에, 그러나 상자를 열자 악취 섞인 뿌연 연기와 함께 거대한 지네 한 마리가 튀어 나온다. 사마리아 지하의 뷰엘을 지키는 지네괴수 아베키가 로이들과의 생사를 건 사투를 위해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아베키에게는 화염 계열의 주문이 통하지 않으므로 주의. 모든 힘과 마력을 동원한 끝에 로이들은 아베키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한다. 드디어 세 조각난 뷰엘 중 한 조각인 사마리아 지하의 뷰엘을 손에 넣은 것이다.

    자레스 왕조의 시조이자 지하무덤의 주인인 나일 1세에게 경의를 표한 후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복도 끝에 있던 문이 폭발하며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그 앞을 석상들이 막아서지만... 순식간에 석상들은 모두 산산조각 나버린다. 대단한 힘의 소유자, 로이들이 상대조차 못했던 석상들을 그것도 모두 일순간에.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로이들은 알 수 없는 전율에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역시 위오의 대리자! 이 곳까지 오다니, 솔직히 조금 놀랐어.

    희미한 돌먼지 사이로 괴한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로이는 그에게 정체를 밝히라며 호통친다. 그녀의 이름은 크로스, 오세리스의 대리자인 카이엘의 왼팔에 해당하는 일급 흑마도사였다. 그녀는 로이들에게 장난은 이게 끝이라며 네오 테리탄으로 전원의 주문을 봉쇄시킨다. 또 세레인 강을 넘었으니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홀 주문으로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로이들은 마기를 피해 다시 석실 안으로 도망쳐 들어오고, 그녀는 요염한 말투로 작별인사를 마치더니 지하무덤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홀 주문에 의한 마기는 이제 석실 내부에까지 스며들고, 마리우스와 아리엘은 그만 정신을 잃어버린다. 로이도 서서히 자신의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그런데 하늘이 로이들을 도운 것일까? 석실 한 쪽 구석이 무너지면서 두 사람이 불현듯 모습을 내민다. 그들은 바로 일전에 정령의 돌을 바꿔치기했던 도굴꾼 코쿠스와 그의 조수. 보물을 훔치러 땅굴을 파고 이 곳까지 왔다가 로이들이 마기에 질식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얼떨결에 그들은 로이와 함께 마리우스와 아리엘을 데리고 지하무덤 밖으로 나온다. 여왕의 병사들은 이미 땅굴의 입구를 포위한 후 도굴꾼을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코쿠스가 로이들을 데리고 땅굴을 빠져나오자 무척 황당해하는데... 궁전에서 원기를 회복한 로이들은 목숨을 구해준 코쿠스와 그의 조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여왕도 그들의 공을 치하하며 엄청난 상금을 하사한다. 그러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코쿠스는 여왕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자비를 구하는데... 그들이 로이들의 숙소에서 정령의 돌을 훔쳤었다는 말을 듣자 로이들은 무척이나 의아해 한다. 어떻게 우리들이 가짜 정령의 돌로 지하무덤 안을 누빌 수 있었던 거지? 여왕은 과거를 사죄하는 코쿠스를 용서함과 아울러 그에게 위오의 대리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영웅이라는 명예를 더해준다. 또 로이들에게는 작별의 선물로 전투시 일행을 무조건 탈출시켜주는 사마리아의 목걸이를 하사한다.

    성대한 축하의 밤이 지난 후, 다음날 아침에 로이들은 사마리아 지상의 뷰엘을 찾기 위해 미노아 항구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떠나는 길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정령의 돌을 건네줬던 노인을 찾아가는데... 그는 로이들의 의문에 대해 정령의 돌은 그걸 가진 자의 마음이 나일 1세의 영혼을 움직였을 경우에만 그 기능이 나타난다고 설명해 준다. 중요한 것은 돌의 종류가 아니었던 셈. 결국 로이들의 마음이 나일 1세로 하여금 스스로 지하무덤의 입구를 열게 만들었던 것이다. 로이가 노인에게 이름을 묻자 노인은 나일이라는 한마디 말을 끝으로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알 수 없는 신비감에 휩싸인 로이들은 한동안 그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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