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9시에 울리던 핸드폰 알람 소리
일어나는 건 언제나 1등
먼지 자욱이 쌓인 쓰레기장 같은 방
때묻은 이불, 땀에 쩔은 베게
얼음장처럼 냉기가 올라오는 방바닥
전기면도기의 베터리 떨어진 듯한 시원찮은 모터 소리
몇 일째 물도 못내리고 있는 뚜껑 닫힌 좌변기
수도물의 흔적을 어느새 잊어버린 한심한 수도꼭지
매서운 한파에도 끝까지 고집했던 찢어진 청바지
죽어도 때타지 않는 검은색 오리털 파카
어깨까지 지저분하게 늘어진 긴 생머리
이것저것 잡동사니 가득 들어있는 조그마한 노랑색 가방
밤새 긁적이던 연습장... 검은색 젤로펜 하나
왼손 약지에 걸려있는 싸구려 쌍가락지
머리감고 발 씻으러 출퇴근하던 동네 목욕탕
첫날 목욕탕 아저씨가 던진 말... '거기 남탕이예요!'
길 건너편 편의점 'Buy the way'
볼수록 포근한 점장님 얼굴
03학번 새내기 아르바이트생과의 주말 수다
참치마요네즈가 들어간 삼각김밥 하나
넓다란 종이팩에 담긴 딸기 우유
주머니에 가득 쌓인 10원짜리 동전들
태봉빌딩 3층 아이소닉 온라인
입구 바로 앞 부스에 찬바람 씽씽 들어오는 가장 바깥쪽 자리
1기가 램과 MAYA44 오디오카드가 장착된 슈퍼 컴퓨터
야전상의로 덮혀 있는 먼지 쌓인 KAWAI X-130 키보드
클라이언트 리소스 용량 줄이기 다이어트 - KKalKKari Tool 작업
뒤늦게 야근 일지 정리하기
인터페이스 이미지 작업 완료 내역 확인하기
단골 점심 메뉴 - 차이나 테이블의 해물야채볶음면
겨울에도 좁아서 후덥지근한 회의실
경만옹 자리에 둥지를 튼 레고 형제들
내 몸이 반기는 청량제... 콜라 한 잔의 여유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봤던 2002 월드컵 골 모음
장송행진곡과 함께 죽는 서버
에우론, 토끼, 메딕, 자메이카(JamesCha)... 그리고 손오공
항상 회사에서 시켜먹었던 저녁 메뉴... 레몬 도시락의 돼지 두루치기
식후 따뜻한 녹차 한 잔
동접자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던 모니터
한 달째 비어 있는 의자와 컴퓨터
새벽까지 계속되던 패치 테스트
회사 화장실에서 씻고 빨래하기
편의점에서 산 생수 한 병
숙사 보일러실에 숨겨진 열쇠
TV 켜 놓고 만화책 보는 지오성
희뿌연 담배연기... 옆으로 흘러넘친 뚱뚱한 쓰레기 봉지
지친 일상의 안주거리... 피로, 한숨,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
또 한 장 메워지는 연습장... 환한 형광등 불빛에 잠설치던 승원씨
깜깜한 방 안의 2층 침대 두 개
머리맡에서 희미하게 스며 들어오는 겨울바람... 그래서 이불은 두 겹
파이프타고 올라오는 지하 단란주점 노래소리
1층 사철탕집 똥개 짖어대는 소리
술취한 남자랑 아가씨 싸우는 소리
그리고 다시금 찾아오는 똑같은 꿈
플루낙스 필드를 달리는 나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하얀 도적
전방에 보이던 넓은 호수
디바의 눈을 피해 목욕도 하고
마지막 날에 올라갔던 신전... 둘레 한 바퀴
돌산에서 돌 캐고
장원에서 약초 캐던 사람들을 모두 삼켜버린 애써네이져를 찾아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다가 마침내 정신을 잃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몸뚱아리
그리고
항상 날 수렁 속에서 구원해 주는 똑같은 알람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