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st Episode in 2LSC
2000년 가을, 사령부 지휘통제실 일직상황을 보던 어느 날...
이 날의 일직부관은 예전에 같이 근무를 서 본 경험이 있는 간부였다.
물자처 화학장교로 계시던 윤대위님, 이 분은 영내 여군 중에서 최고의 여성스러움을 자랑하시던 분이었다.
안타까운 TV 화면을 보며 눈물짖기도 하시고, 말투도 나긋나긋하시고...
지통실에 들어선 윤대위님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 마디하셨다.
"또 너야!?"
아마도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셨나보다.
지난 근무 때 영내 야간 순찰을 같이 돈 적이 있었다.
전입오신지 얼마 안되셨을 때라 부득이하게 내가 수행을 했는데 유달리 겁이 많으신 것 같았다.
문제는 대공초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 속을 올라가던 난 문득 그 당시에 본부대에 퍼져 있던 전설 한 가지를 얘기했다.
"저 앞 공터에 나 있는 풀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후레쉬로 그 앞을 비추며 난 저 자리가 예전 영내 골프장 공사할 때 그 자리에서 나왔던 석관의 유골들을 옮겨 묻은 곳이란 사실을 알려줬다.
그래서 이상한 풀이 자란다는 후문과 함께... 솔직히 무서운 얘기를 들려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던진 말이긴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야!"
예상치도 못한 부관님의 외마디 비명에 내가 놀라 주저앉았다.
그 서슬에 자다 깬 대공초소 보초들이 산 아래로 뛰어 내려오고, 부관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들의 경례를 받고 순찰표에 사인을 했다.
내려가는 길에...
"너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무서운 얘기하면 미워할거다!"
그 윤대위님이랑 다시 상황근무를 서게 될 줄이야...문제는 오늘 순찰 순서인 '교-본-일-지', 야간 3번초 순찰이면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였다. 게다가 앞에 있는 교육대, 본부대 당직사관들이 다 부사관들이어서 순찰 순서 좀 바꾸자는 말 한 마디를 못하신 부관님... 그런 부관님 옆에서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오늘 야간 3번초 순찰이십니다." 이 정도면 뭐 확인사살 수준이었다. 처음엔 망설이시는 것 같다가 내가 던진 한 마디에 오기가 솟으셨는지, "오늘은 니랑 안갈 거야. 야 옆에 너 나랑 나중에 순찰 돌자." 부관님은 지금 내가 같이 근무서고 있는 파트너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밤 10시 취침 음악이 끝나면 그때부터 계속 졸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새벽 2시가 조금 넘자 부관님이, "야, 너 나랑 순찰 돌러 나가자." 그러나 그때 이미 그 병사는 골아 떨어져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날 힐끔 바라보시는 부관님, 하지만... "일직사령님도 주무셔서 저까지 지통실을 비울 수는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 혼자서 갔다 올 수 있다." 특유의 대구 사투리와 함께 보란 듯이 지통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리셨다. 약간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병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으셨나 보다. 약 40분 가량 후 다시 지통실로 돌아오신 부관님, 그런데 의외로 만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고 계신게 아닌가! "어, 정말 다 도신 겁니까?" "당연한 거 아냐?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반신반의한 내 표정을 보며 하시는 말씀이 정말인 것 같았다. 그때 지통실로 걸려오는 전화 한 통... "나 내무반장인데..." 공교롭게도 이날 당직하사는 당시 우리 내무실 내무반장이었던 문배형이었다. 형으로부터 몇 마디 들은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가 계속 웃고 있자 부관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셨는지 영문을 물으셨다. "혹시 본부대 대공초소 보초 명단이 잘못되었습니까?" 그 말에 부관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한 마디하셨다. "내가 머리를 좀 썼지." 대공초소가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게 영 내키지가 않았던 부관님은 우선 본부대 막사로 올라가 그곳의 일직 근무자를 찾았다. 바로 우리 내무반장이었던 문배형이었다. 불침번이 가지고 있던 근무 명령지를 빼앗아 들고 문배형에게 던진 말, "야, 지금 대공초소에 나가 있는 보초가 누구야?" 형은 그냥 떨떠름하게 명령지에 있는 병사들 이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얘들 맞아? 확인해 봤어?" 순간 뜨끔한 우리 문배형, '아, 이것들이 또 보초 순서 바꿔서 막내들이 보초서고 있구나.'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건 전적으로 일직근무자 책임이었다. "내랑 같이 확인해 보자. 자 앞장 서." 아닌 밤 중에 홍두께라더니... 엉겹결에 같이 대공초소로 향한 문배형, 하지만 왠걸, 근무 명령지대로 보초들이 나와 있지 않은가? 순찰표에 사인하고 내려오면서 부관님이 문배형에게 건넨 말, "미안해. 내가 혼자 가기 무서워서 그냥 한 번 찔러 봤어." 어이가 없는 문배형, 그러나... "너도 솔직히 근무자 확인 안해 보고 올려 보낸 거잖아, 맞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던 난 또 한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졌다. "그럼 관사는 어떻게 다녀오셨습니까?" "그것도 다 방법이 있었지." 이 내용은 부관에게 직접 들은 것보다 그냥 위병소 당직상황병의 진술이 더 웃겼다. 다음 날 아침, 근무를 마치고 경비소대인 8내무실을 찾았다. 마침 전날 당직상황병이 막 자려고 하는 찰나였다. 그 병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위병소에 몰래 도착한 우리 부관님. 위병소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꿈나라에 빠져 있는 상황병... 조심스레 깨워서 위병장교 몰래 밖으로 끌고 나온 후, "너 간이 배 밖에 나왔지? 어디 일직 근무자가 졸고 있어?" 이 말에 잠이 확 달아난 우리 상황병,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가 잠 확 달아나게 해 준다. 관사까지 30초 만에 뛰어 갔다 온다. 실시!"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증거로 관사 순찰표를 가지고 온다. 알겠나?" 그 말에 영문도 모르는 상황병은 관사까지 뛰어 가서 순찰표를 가지고 쏜살 같이 뛰어 왔다. 그러자 순찰표에 아무 말 없이 사인한 부관님이 다시, "다시 30초 만에 갔다 놓구 와, 실시!" 뭔가 이상하다 느끼면서 다시 뛰어갔다 왔다는 것이다. 돌아온 상황병에게 부관님이 하시는 말씀, "미안해. 내가 혼자 가기가 좀 무서워서 그랬어." 같이 문배형이랑 나란히 오침하면서 나눈 이야기, "아, 정말 부관 때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 말에 내가 조용히 눈 감은 채로 대꾸했다. "제가 예전에 부관 간 떨어뜨릴 뻔했었거든요. 그거 복수하고 싶으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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