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to them

    입대한 지 벌써 791일째...

    참 세월 빨리 흘러가더란 선배들의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이렇게 눈 앞에 닥쳐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구나. 처음엔 아무것도 없던 내 전투복에 작대기가 하나 둘 더해지더니 그것도 모자라 양 어깨에 녹색 견장도 달아보고, 이젠 아직까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예비군 마크가 달려 있네. 주위 사람들의 부러워 하는 시선을 받으며 나름대로 거창하게 환송식도 치르고, 모두가 잠들어 버린 이 새벽, 입대하기 전날과 똑같이 밤을 지새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이 펜을 들기가 쉽지만은 않더구나. 나이도 먹을 만큼 지긋하게 먹은 것 같은데 왜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손이 떨려오는지. 이젠 여기서 같이 웃으며 고민하며, 정을 나누며 지낼 수 없다는 그 아쉬움이 이렇게 내 코 끝을 징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날이 밝아오네, 2001년 6월 19일의 새로운 아침이...

    많이 고생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너희들이 내 곁에 있어 줘서 큰 힘이 되었단다. 나 나름대로 서로 간에 은원(恩怨)의 고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게 한 순간 너희들을 시험에 들게 했는지도... 미안한 생각뿐이란다. 그래도 그때는 이런 미안한 마음도 잠시 접어 두었었지. 마지막에 서로 웃기 위해서, 나와의 싸움에서 마지막에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였어. 언젠가 편지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있더구나.

    '항상 즐겨 말씀하시던 가족이란 말,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어느덧 우린 한 가족이 되어 있네.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할게. 그때의 가슴 뭉클했던 감동을...

    처음 내 양 어깨에 녹색 견장이 달렸을 땐 정말 마음이 숙연해지더구나. 20명이 넘는 가족들을 챙겨 나가야 하는 엄청난 중책이었기에 그만큼 부담도 컸었고. 그래도 한 번 앞에 가서 자랑도 해 보고 싶더구나. 그 때 안좋은 모습들만 보여주던 선배들에게 한 번 보란 듯이 말이야. 뒤이어 닥친 큰 훈련, 각종 행사 때문에 서로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고 하던 모습들을 통해 내가 이런 내무실의 선임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고 고마워 했었어. 이제서야 부끄럽지만 감히 입을 열어 본다. 그동안 능력없고 못난 선임 믿고 따른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 우리 내무실 가족들을 다 감쌀 만큼 가슴도 넓지 못했고 모두를 끌고 나갈 역량도 많이 부족했는데 말이야.

    늘 그렇게 해오던 것이지만 선임은 후임들에게 잘 해주고 모범된 모습 보이고, 후임은 선임에게 귀여움 받을 수 있게 생활하길 바란다. 너희가 겪고 느낀 안 좋은 것들은 후대에 답습하지 말고 과감하게 끊어버릴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해. 선임은, 먼저 나가는 사람은 결코 군 생활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단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평가해 줄 수 있는 자는 바로 후임들이기 때문이지. 우리 가족들 모두 자신들의 후임들에게 모범적이고 성실한 선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남은 군 생활 잘 마무리짓길 빌게.

    항상 몸 건강하고 아무 탈, 사고 없이 주어진 2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길 멀리서나마 두 손 모아 기도하마. 나도 부족하지만 지나간 군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테니. 훗날 멋진 모습으로 사회에서 만나자.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어. 우리 모두를... 사랑해.

    2001년 6월 19일 새벽
    Ethessa in 2LSC, 그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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